6월 민주항쟁 34주년… 역사속 이한열 열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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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생애기록 38건이 지난 8일 공개됐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한열 동산에 위치한 판화 조형물. /사진=뉴스1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생애기록 38건이 지난 8일 공개됐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한열 동산에 위치한 판화 조형물. /사진=뉴스1
10일은 6월 민주항쟁 34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8일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생애기록 38건을 복원하고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이한열 열사의 일기에서 학생으로서의 평범한 일상 외에 삶과 세상에 대한 진지함과 다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쓴 편지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도 엿볼 수 있다.

지난 1987년 당시 이 열사는 민주화 시위과정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이번에 복원된 기록은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열사의 유품이다. 고교생 시절의 기록과 압수·수색 영장, 부검결과 등 6월 항쟁과 관련된 기록들이다.
My Life라고 쓰여있는 이한열 열사의 생전 일기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My Life라고 쓰여있는 이한열 열사의 생전 일기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이 열사는 지난 1982년 12월26일 "나는 우리 선조들이 당한 수모를 이를 갈며 보았다"며 "더욱 더 힘을 길러 강국이 되어야 겠다는 굳은 결의가 나의 가슴을 스쳐갔다"고 일기를 썼다. 이어 "만일 대한제국이 무사히 지속되었더라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역사 속에 만일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글을 이어갔다.

지난 1982년 12월31일에는 "17세의 이 나이에 나는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오늘은 한해를 보내는 기분이 다른 때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나는 한해 한해 나이 먹기를 원했으며 빨리 컸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정신적 바램이 컸던 해라고 본다. 나의 생각 나의 사상은 점점 어떤 확고한 가치관을 통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라고 썼다.

이듬해 1월3일에는 "오후에는 '도산사상'이란 책을 읽었다. 우리 민족의 선각자인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성실'이란 두글자가 내 마음을 몹시 흥분하게 했다. '성은 하늘의 도리요, 성(誠)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 그렇다. 인간은 모든 일에 완전할 수 없다. 인간의 참 모습은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또 한층 노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이라고 기술했다.

이 열사의 신문에 실린 새마을 수련회 참가기와 당시 부모님께 쓴 편지에서 그가 수련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국민과 국가에 대한 성숙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한열 열사가 기록한 일기의 모습. 그의 진지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이한열 열사가 기록한 일기의 모습. 그의 진지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이 열사는 지난 1984년 당시 편지에서 "학과시간에는 저명한 인사들의 강의를 통하여 우리의 자아를 기르고 우리의 역사를 배우고 국민의 한사람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배우며 제 자신을 이기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련을 통하여 지금까지 제 자신에게 결여되었던 점을 보충할 수 있었고 좀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아버님, 어머님께 좀 더 걱정을 덜어드리고, 어엿한 자식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이 열사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을 알 수 있는 기록도 공개됐다. '1987년 6월9일 5시5분쯤'으로 시작하는 글에서는 "우리는 떨리는 걸음으로 중환자실 문으로 들어갔다. 우리 한열이가 왜 그래요? 정말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이 없고 코, 입, 산소 호흡기를 온몸에 착용해서 이름도 모르는 기계에 의해 호흡하고 있었으니… 27일 동안을 말 한마디 못해 보고… 한열이는 7월5일 2시5분에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라고 적어 학교로부터 위독한 상황을 전달받은 순간부터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이하기까지 겪었던 상황과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6월 항쟁과 관련한 기록에는 사망 이후의 '압수수색 검증영장'과 '부검결과 이물질 규명 중간보고'가 있다. 이 중간보고는 당시 이한열 열사의 주치의가 부검 과정을 수기로 남긴 한 장의 기록으로 이 열사의 머릿 속에서 발견된 이물질의 분석 내용과 직접적인 사인이 '최루탄 피격'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에 복원된 기록물 원문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향후 이한열기념사업회와 e-뮤지엄에도 공개될 예정이다.
 

조희연
조희연 gmldus1203@mt.co.kr  | twitter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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