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휴게 분리없는 '학교의 밤'…16시간 지켜도 인정은 '5시간'

학교당직기사 열악한 처우…권익위 지적·노동부 약속에도 제자리 특수고용직 직고용 월급 130만원…감시·단속직 근로기준법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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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당직기사 선만옥씨(가명)© 뉴스1
학교당직기사 선만옥씨(가명)© 뉴스1

(서울=뉴스1) 최현만 기자 =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출입문 개폐, 외부인 출입 통제 등 업무를 하는 학교당직기사 선만옥씨(가명)는 평일에는 오후 4시30분에 출근해 익일 오전 8시30분에 퇴근하고 주말·공휴일에는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익일 오전 8시30분에 퇴근한다. 규정상 이 시간 동안 학교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는 격일제로 평일 16시간, 주말 24시간을 학교에 머무르지만, 한 달을 꼬박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약 90만원에 불과하다. 그가 학교에 있는 평일 16시간, 공휴일·주말 24시간 중 각각 5시간, 7시간만 실 근무시간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처리돼 급여를 받지 못한다.

13일 뉴스1이 취재를 통해 만난 학교당직기사들은 장시간 학교에 있지만 휴게시간이 과다하게 책정돼 저임금에 시달린다며 임금체계를 개편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평일 기준 학교 당직실에서 불편하게 자는 수면시간 약 8시간과 근무시간 중간에 끼어 있는 약 3시간이 모두 휴게 시간으로 처리돼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휴게시간이라고 해도 업무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학교당직기사와 같은 감시·단속직 근로자들의 휴게시간이 근로 인정 시간을 초과하면 안 된다고 개선방안을 발표했지만, 현장에서는 휴게시간이 근로 인정 시간의 무려 두 배를 넘기고 있었다.

◇"휴게시간에도 외부인 출입 단속…근무시간 인정해야"

학교당직기사들은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대부분 명목상 휴게시간으로 분류됐지만, 휴게시간에도 업무를 수행하기에 근무시간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씨는 "교장 선생님이 학교 담장이 낮으니 담을 넘는 사람이 있는지 잘 보라고 해서 휴게시간에도 편히 쉴 수 없다"며 "이른 새벽에 영양사가 문을 열어달라고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에 한 초등학교에서 당직기사로 일하는 오모씨(80)도 마찬가지였다. 오씨는 "휴게시간이라고 하더라도 편하게 쉬거나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사람들이 담을 넘어서 들어올 때가 있어 휴식 중간중간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칙적으로 감시·단속직 근로자들은 당직실과 분리된 적절한 휴게공간이 있어야 하지만 이조차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들은 폐쇄회로(CC)TV, 감식기 등 전자기기 불빛과 소음으로 수면시간에 방해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당직기사들이 과다하게 책정된 휴게시간으로 합당하지 못한 임금을 받는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미 2014년에 '학교(국·공립,사립 초·중·고교) 당직기사의 권익보호를 위한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저임금 노동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권익위는 "업무 특성상 휴게시간 중 학교를 벗어나기 어렵고 사고발생 시 책임부담의무 등이 부과돼 사용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평일 학교 당직기사의 구속시간은 대부분 15시간 이상이나 근로인정시간은 5시간 미만이고 토·일요일은 8시간 미만인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학교당직기사에 관한 국민청원.(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1
학교당직기사에 관한 국민청원.(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1

◇학교 직고용에도 저임금 해결 안 돼…"나이 많으면 여전히 파견 근무"

학교당직기사들의 저임금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되면서 2018년에는 정부에서 나름의 해결책으로 기존에 용역회사에서 파견근무 형태로 일하던 학교당직기사들을 학교에서 직고용했다. 하지만 열악한 처우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학대와 천대에 시달리는 고령노동자 학교 숙직원들에 대한 고용 위협'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지난 11일 기준 309명의 동의를 받았다.

경기도의 한 학교당직기사라는 청원인은 "우여곡절 끝에 용역회사 파견신분에서 학교의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직고용되는 변화를 가져왔다"며 "그러나 애초에 기대했던 처우 개선과 근로조건은 별로 향상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학교 행정실에 예속돼 더욱 푸대접받는 신세로 전락했다"고 밝혔다.

이어 "교육당국은 무슨 연유로 연로한 숙직자들에는 130만원대의 최저임금에도 훨씬 미달하는 대우를 우리들에게 강요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달라"고 꼬집었다.

오씨 역시 "직고용돼도 임금에서 별 차이가 없다"며 "직고용되면 65세 정년도 생기기 때문에 정년을 넘는 사람들은 여전히 용역회사를 통해 파견 근무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시·단속직 근로자의 '설움'…"합리적인 기준 필요"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학교당직기사와 같은 감시·단속직 근로자의 처우에 대한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휴게시설 장소 분리, 적정 실내온도 유지, 소음 차단 및 위험물질 노출 금지 등의 기준을 마련해 감시·단속직 근로자가 적절한 환경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며 "휴게시간이 근로시간보다 많아질 수 없도록 상한을 설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약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휴게시간이 근로 인정 시간보다 많은 상황이다. 오씨 역시 평일 기준 학교에 있어야 하는 총 16시간 중 5.5시간만 근로시간으로 인정받고 나머지 10.5시간은 휴게시간으로 처리됐다. 고용노동부 발표가 실제 근로자들의 처우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감시·단속직 근로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학교당직기사의 휴게시간이 과하게 책정됐다고 볼 수 있다"며 "정부에서 업무의 성격을 조금 더 명확하게 규정하고 휴게시간 책정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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