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생소한 소비기한… 날짜만 길어지나

[머니S리포트-유통기한 vs 소비기한 뭐 써야 해?②] 표시제 바뀌면 안 버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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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이건 또 언제 사놓고 안 먹은 거지?’ 냉장고에 유통기한 지난 식품이 눈에 들어온다. 버리자니 아까워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우유를 마셔볼까 싶지만 ‘유통기한=폐기시점’이라는 공식이 뇌리에 스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에서만 매일 1만4314톤에 달하는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진다. 정부는 이와 같은 사태를 인식하고 식료품에 표시되는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자는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유통기한 지난 음식, 먹어도 진짜 문제없을까.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식품기한 표시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식품기한 표시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영국 런던에 체류하는 대학생 김모씨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 들었다. 유통기한은 이미 지났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유통기한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유는 냉장 보관하면 최대 60일까지는 섭취해도 된다. 하지만 김씨의 예상과 달리 냉장고에서 보관된 우유는 상해서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당황한 김씨는 우유에 적힌 기한을 다시 확인했고 ‘Use-by date’(소비기한)란 표기가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숫자만 보고 ‘Sell-by date’(유통기한)일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었다. 영국은 유통기한 대신 기간이 긴 소비기한을 제품에 표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식품기한 표시로 익숙한 유통기한이 해외에선 생소한 단어로 바뀐다.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식품기한 표시로 유통기한을 사용하지 않아서다. 실제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은 물론 동남아·아프리카 등 다수 국가에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2018년 소비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식품기한 표시 제도에서 유통기한 개념 자체를 삭제했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식품기한 표시인 유통기한이 세계 무대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구매 시 가장 먼저 확인하는 유통기한


소비자 대다수는 식품을 살 때 가장 먼저 유통기한을 확인한다. 신선도가 맛과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잣대라는 판단에서다. 양성범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팀이 국내 성인 33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넷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98.2%가 마트에서 가공식품을 구입할 때 주로 확인하는 정보로 유통기한을 꼽았다. 이어 ▲제품명(92.1%) ▲제조사(81.3%) ▲섭취 방법(81.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신선도를 판단하는 척도를 넘어 구매의 기준으로 작용할 만큼 국내 소비자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아직은 생소한 소비기한… 날짜만 길어지나

식품기한 표시제도는 식품의 특성 및 생산·유통 환경 등에 따라 국가별로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85년부터 유통기한 표시제를 고수해왔다. 2007년 부패나 변질 등의 우려가 적은 식품에 한해 품질유지기한을 적용하고 2012년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같이 표기하는 방식을 시범 도입하는 등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에 힘써왔지만 효과는 미미하고 소비자에게 혼선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30년 넘게 유통기한을 고집해온 이유다.

하지만 최근 유통기한 표시제가 음식물 쓰레기 양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소비기한 도입에 점차 힘이 쏠리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도록 식품표시광고법 등 관련 규정을 개정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해 7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은평을)이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국인에겐 낯선 ‘소비기한’


유통기한은 판매자 중심의 표시 방법이다.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반면 소비기한은 식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규정된 보관 방법만 준수한다면 유통기한보다 더 길게 식품을 소비할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계란 45일(유통기한 20일+소비기한 25일) ▲우유 60일(10일+50일) ▲두부 104일(14일+90일) ▲치즈 8개월(6개월+70일) 등으로 사용 가능한 기간이 늘어난다. 따라서 소비기한을 도입하면 유통기한을 폐기 시점으로 인식해 버려지는 식품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 한 관계자는 “소비자 대부분은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비기한 도입 시 식품 폐기 비용 절감 효과는 소비자 3000억원, 생산자 176억원으로 소비자·생산자 모두 편익이 증가한다”고 평가했다.
아직은 생소한 소비기한… 날짜만 길어지나
EU와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대부분 일찌감치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했다. 보다 효과적인 사용을 위해 소비기한과 함께 품질유지기한 등 다른 표기제를 병행하기도 한다.

한국도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소비기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소비자 안전을 근거로 한 일부 식품업계의 반발이 거세고 전 국민이 30년 넘게 사용해온 유통기한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홍보와 정보 제공이 요구된다는 의견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올 2월 전국 외식업체 종사자 1023명을 대상으로 방문·전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비기한 표시제가 소비자의 혼란을 방지하고 외식업체의 식품 폐기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다(47%)와 매우 그렇다(24%) 등 긍정적인 답변이 71%에 달했다. 다만 소비기한의 의미를 묻는 질문엔 절반 가량이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의미를 아는 응답자가 약 30%에 불과해 소비기한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승훈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기존에 있던 제도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하지만 제도 변화에 앞서 소비기한의 개념이나 식품 구매 후 보관 방법 등 정부 차원에서 올바른 홍보와 교육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지웅
최지웅 jway0910@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1팀 최지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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