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규 인터뷰] 102세 김형석 교수 "인생 화양연화는 '60세'…가족도 나라도 사랑하세요"

[뉴스1 창립 10주년 발행인 인터뷰] ①한국 철학 큰 산맥을 만나다 "고생 끝 안보이던 시절에 최고 행복 있더라…청년들, 희망 잃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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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민영 뉴스통신 <뉴스1>(대표이사 이백규)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한국 철학의 큰 산맥'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한국 현대사 100년을 몸소 겪어 온 그에게 앞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기 위해서였다. 그는 무엇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마음'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서울=뉴스1) 이백규 대표이사,정수영 기자,정윤경 기자,문영광 기자 = 1920년생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100세 시대의 롤모델이자 존경받는 우리 시대의 어른이다. 격동의 한 세기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이 노(老)교수에게 삶의 지혜는 물론, 건강비결 그리고 은퇴 후 인생설계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102세에도 그는 현역이다. 지난해만 해도 130회가량 강연을 했다. 중고등 학생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그의 강연에 귀 기울이는 청중 연령대는 폭이 넓다. 집필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5월 '백년의 독서'를 냈고, 오는 11월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신문 고정 칼럼도 쓰고 있다.

'한국 철학계의 거목'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지혜와 사유의 씨앗을 심어준 김형석 명예교수.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비롯, 양극단으로 나뉜 한국 사회의 갈등 해결법과 차기 대통령의 필수 덕목은 무엇인지에 이르기까지 김형석 교수에게 '백 년의 지혜'를 구했다.

지난 16일 김 교수와 <뉴스1> 이백규 대표이사가 만났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대담에도 그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왼쪽 청력만 약할 뿐, 귀에 보청기도 꽂지 않았다. 대담 중간중간 치아를 드러내며 소년처럼 웃었다.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사랑과 민족과 국가였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16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16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인간미 있는 사람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웃음' 남겨

-건강은 어떠십니까. 요즘도 수영하시는지요.
▶ 50대 후반부터 수영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매일 나가다가, 그다음엔 일요일만 쉬고 최근까지 계속 나갔지요. 그런데 코로나가 번지니 중단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요즘은 못 하고 있어요. 산책도 하는데, 몹시 더운 시간을 피해 우리 집 뒤에 있는 야산을 하루에 30~40분 걷지요. 습관이 되니 건강에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해맑은 웃음이 일품입니다. 웃는 모습이 소년 같으십니다.
▶(활짝 웃으며) 내가 잘 웃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어린아이처럼 웃는다고요. 내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화를 내거나 남 욕하지 않고 사랑이 있는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해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그렇게 자랐고요. 안병욱 선생(숭실대 명예교수, 1920~2013)이 가까운 친구인데, 생전에 어린아이같이 웃었거든요. '내 인생을 이렇게 지켜왔다'는 뜻일까요. 인간미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늙을 때까지 행복하고 아름다운 웃음을 남기지 않나 생각해요.

김 교수는 그러면서 100세 이상 산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두 가지 공통점에 대해 덧붙여 말했다. "내 친구들 가운데 100세 넘게 산 사람이 일곱 명이 있다"면서 "이들과 만나 대화해 보면 첫 번째 욕심이 없고, 두 번째 남을 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발견한 장수(長壽)의 비결인 셈이었다.

◇ 간디·톨스토이에게 받은 영향…청소년기에 읽어야 할 책

1920년 평북 운산군에서 태어나 평남 대동군에서 자란 김 교수는 스물다섯 살에 광복을 맞았다. 환희는 잠시뿐이었다. 공산 치하의 세월은 일제강점기보다 더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 세월을 견디다 스물일곱, 살아남기 위해 탈북했다. 서른 살엔 6·25전쟁을 겪었다.

-돌아보면 젊은 시절은 어떠셨습니까.
▶어렸을 때 학교에 가면 모두 나라 걱정을 했어요. 교회 가도 모세(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한 지도자) 같은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고 들었지요. 좀 좋게 말하면 지금 젊은이들보다 일찍 철들었던 거 같고요. 즐겁게 살 수 있는 세월은 아니었지요. 내가 중학교 입학했을 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사람이 자기와 자기 가정만 생각하고 살면 자기 가정만 이끌 수 있는 만큼밖에는 크지 못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내 직장을 걱정하면 직장과 지역사회에서 커질 수 있다. 그런데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고 살면 큰 인물이 될 수 있단다." 내 삶 가운데 아버지 말씀이 늘 밑바탕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영향을 크게 받은 '내 인생의 인물'을 꼽으신다면?
▶인도의 간디와 톨스토이가 내게 영향을 많이 줬어요. 이들로부터 내가 배운 건,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간디와 톨스토이는 그 고민을 품고 실천하다 일생을 마쳤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짐을 대신 져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고마운 분들이죠. 그들이 내게 휴머니즘의 씨앗을 뿌려준 것 같아요. 톨스토이와 간디의 생각이 오늘까지도 날 이끌어주고 있다고 생각하죠.

김형석 교수는 그러면서 청소년들이 간디와 같은 훌륭한 인물의 자서전이나 전기를 두루 읽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간디가 어떻게 살았는지, 톨스토이가 무슨 고민을 갖고 살았는지, 예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를 보면 좋겠다"며 "그들의 고민이 담긴 책을 읽고 자라는 학생들은 큰 나무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큰 나무는 못 된다"고 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간디와 톨스토이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간디와 톨스토이가 "내게 휴머니즘의 씨앗을 뿌려준 것 같다"고 했다. 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젊은이들 보면 마음 아파…"사랑이 있는 고생이 인생"

-요즘 젊은이들이 빚을 내 주식이나 암호화폐 등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힘들어하는 젊은이들도 많지만 또 한편으론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가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먼저 우리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결혼하고 싶어도 집을 장만할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을 겪는 걸 보면 마음이 좀 아프죠. 우리 기성세대의 잘못이니까요. 그래도 제가 청년이었던 시대, 즉 나라도 없었고 사회적으로 희망도 없었던 시대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두 번째는 아무런 고통과 문제의식 없이 편안히 자란 사람은 60세가 넘으면 인생의 열매가 없다는 거예요. 오히려 시련과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어른이 되면 사회에 열매를 남기지요. 문제는 어려움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입니다.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품고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백 세를 살아 보니, 고생이 있는 행복이 제일 큰 행복이고, 고생의 짐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알게 돼요. 그래서 '사랑이 있는 고생이 인생'이라고 나는 믿고 있어요.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우리 젊은이들에게 사랑이 있는 고생을 못 해 본 사람은 고해(苦海)와 같은 인생, 허무한 인생을 살 게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김 교수는 30대 후반까지는 인생의 시련기였다고 했다. 가난과 고생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전쟁 와중에 6남매를 키웠다. 거기에 동생 3명과 어머니까지 책임져야 할 가족이 10명이나 됐다. 그는 그러나 "사랑이 있는 고생을 했던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인생의 '화양연화'(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는 언제였다고 보십니까.
▶가장 살맛 나고, 보람 있고, 제일 좋았다고 생각한 나이는 60~75세예요. 좀 길게 잡으면 60~80세이고요. 내가 젊었을 때 '이다음에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지 말자, 60세 넘어 사회에서 버림받는 늙은이가 되지 말자'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내 인생을 가장 화려하게 산 기간은 60세에서 75세라고 생각해요. 제일 나답게 살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늙었을 때 아닌가?"라고 생각할 텐데, 내 인생에서 60세에서 80세까지를 빼버리면 예순 이전의 인생도 없고 여든 이후의 인생도 없지 않나 싶어요.

김형석 교수가 16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이백규 뉴스1 대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김형석 교수가 16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이백규 뉴스1 대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이웃과 국가, 민족 위한 마음은 죽어서도 남아"

-100세 시대인데 직장 은퇴 후 삶이 깁니다. 은퇴한 후의 삶을 어떻게 계획하면 좋을까요?
▶직장을 떠났다고 해서 내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정년을 맞이하고 (연세대학교)를 떠났는데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거든요. 지금까지 일하고 있고요. 내 고등학교 제자가 예순셋에 공직에서 떠나 서예를 시작했어요. 지금 90세가 됐는데, 얼마 전 서예전을 한다고 날 초대했어요. 직장과 일은 별개이기 때문에 내 일은 내가 만들어 가져야 한다고 봐요. 직장이라는 공간은 있지만, 내 일은 따로 있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강원도 양구에 안병욱 교수님 묘 옆에 가묘(假墓)를 만드셨다고요. 사람은 누구든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양구 분들이 나하고 안 선생(故 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의 고향이 북쪽이라 훗날 갈 곳이 없으니 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어요. 안 선생이 먼저 가시고 그 옆에 내 자리도 있고요. 나도 양구 분들 위해 강연 등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지요.
죽음은 인생이라는 마라톤 경기의 골인 지점에 이르는 거겠지요. 그러면 인생이 그것으로 끝날까요. 아니죠. 내가 이웃과 민족과 국가를 위해 걱정한 것이 있고, 한 일이 있으면 그건 남아요. 내가 나를 위해 한 일은 남는 게 없어요. 하지만 내 이웃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 걱정한 마음, 그 마음은 죽어서도 남아요. 인생이 아름답고 선하게 마무리되는 게 죽음이겠죠.

-<뉴스1>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하는 일이 '이다음에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겨 줄까?' 그 생각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떠나면 무엇이 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일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 말미 이백규 대표이사가 김형석 교수에게 '이루고 싶은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있는지 물었다. 김 교수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나 자신의 책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이미 그의 마지막 소망을 기록했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나보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민족과 국가를 향해 있었다.

김 교수는 100년의 인생 가운데
김 교수는 100년의 인생 가운데 "사랑이 있는 고생을 했던 때가 제일 행복했다"며 "내가 떠나면 사회에 무엇이 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일할 것"을 당부했다. 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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