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소매업자로 정의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유통산업은 경험산업입니다. 메타버스와 디지털 체험을 통해 새로운 고객경험, 놀라운 체험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소매업의 핵심은 체험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디즈니(Disney)의 혁신·창의성 부문사장을 역임했던 덩컨 와들(Duncan Wardle)이 한 말이다. 유통업계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유통산업의 정체성이 급변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100년 만에 인류에게 찾아온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이 많은 것을 바꿔놨다. 소비자 입장에서 쇼핑과 라이프스타일은 근본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은 소비자가 돈과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뜻하는 용어다.

한국시장에서 모바일 비대면 쇼핑이 전체 소매시장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그 결과 쇼핑은 비대면, 모바일 경험이 주된 활동으로 변했다. 새벽배송으로 한국 1위 소매기업으로 성장한 쿠팡은 고객의 집에 배송하는 최종 1마일, 즉 라스트마일 서비스 혁신을 통해 새로운 고객경험을 창조했다.

라스트마일(제품이나 서비스가 소비자와 만나는 최종 접점) 혁명에 이어 요즘에는 퍼스트마일(생산지에서 출발해서 물류 보관창고까지의 구간), 미들마일(기업과 기업 간 물류 이동이 일어나는 구간) 분야에서도 물류혁신이 벌어지고 있다. 쿠팡과 쓱닷컴 같은 온라인으로 모든 구매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오프라인 유통매장은 상품을 판매하는 기능적인 공간에서 진화해 고객의 오감을 자극하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체험 공간'으로 변화 발전하는 것이다.

둘째, 산업간 경계가 융화돼 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가 가속화하고 있다. 쿠팡을 어느 산업으로 분류해야 할까. 쿠팡은 도매, 소매 판매 플랫폼이자 풀필먼트 물류 서비스 기업이라는 다중 정체성을 갖고 있다. 전통적 표준 산업분류로 해석하면 도매업이자 소매업이자 물류업이자 데이터 서비스업인 것이다. 과거의 산업분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산업간 융화가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유통산업은 결국 충성 고객(팬덤)을 끌어모으기 위해 몰입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경험산업으로 그 정체성이 변하고 있다.

셋째, 2021년부터 한국은 인구 감소 국가로 분류되는 형편에 놓였다. 고객 수가 증가하기는커녕 감소하는 상황이 조만간 다가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미국-중국 간 경제 전쟁에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영토 전쟁으로 전 세계 공급망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공급 대란으로 세계 경제의 지속 성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신규 고객 수가 늘어나기 힘들어지면서 기존 고객을 멤버십 고객으로 프리미엄 고객으로 열광 고객(팬덤)으로 만들어 객단가를 끌어올려야 한다.

21세기 유통기업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유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불안감과 경제난에 갈등을 견디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행복한 체험을 만들어주는 경험 설계자이자 새로운 고객 경험을 창조하는 프리미엄 서비스 기업이 돼야 한다. 고객은 '게스트'이고 직원은 게스트의 행복을 위해 출연하는 '출연자'가 돼야 한다. 이제 유통산업은 경험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