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살해 '전세사기'] 잔금 날 3.2억 들고 도주한 집주인, 알고 보니 조직원

공인중개사 "입금 먼저 해야 기존 세입자 퇴거할 수 있어" 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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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세사기로 3억2000만원을 잃은 피해자 안씨는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스1
#. 안씨는 지난해 2월 서울시 중랑구에 위치한 한 다세대주택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임대인 김씨와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만나 "한 달 후에 잔금을 치르면 기존 세입자에게 송금하고 퇴거와 동시에 집을 인도하겠다"고 약속받았다. 보증금 3억2000만원 전세계약으로 계약기간은 2021년 3월 12일~2023년 3월 11일이다. 안씨는 집주인에게 계약금 1600만원(5%)을 입금했고 잔금 전에 전세자금대출 1억9300만원을 빌렸다. 이후 잔금일인 2021년 3월 12일. 공인중개사는 안씨에게 전화를 걸어 "잔금을 먼저 보내야 기존 임차인이 퇴거할 수 있다"면서 입금을 요구했다. 약속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집주인이 현재 대전에서 서울로 오고 있다는 말을 믿은 안씨는 잔금을 치렀다. 하지만 집주인은 몇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기존 세입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퇴거를 거부했다.

서민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 수년간 지속된 저금리로 전셋값이 천정부지 치솟고 무자본 갭투기(매매가-전세금 차액만 내고 세입자가 사는 집을 매수)가 기승을 부리며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전세사기 특별단속을 지시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누적된 전세 피해자들을 한 번에 구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보인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대부분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 소재한 저가 다세대주택의 임대차계약을 맺은 저소득층 서민이어서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전세대출을 받은 경우 채무도 변제하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근래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은 유형도 다양해 집주인이 벌인 개인 일탈을 넘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자본으로 임대사업을 벌여 298억원을 갈취한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안씨 사건은 전셋집에 입주도 하기 전 전세금을 통째로 날린 드문 유형으로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임대인의 불법과 비윤리적 행위를 넘어 공인중개사의 책임이 방조돼 세입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현재 안씨는 해당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잔금 날 잠적한 임대인, 중개사 안일한 대처 도마위


집주인이 잔금을 들고 잠적한 사실을 알아챈 안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해 그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해당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도 함께 고소했다. 안씨는 "집주인이 부동산에 도착하지도 않은 상황에 잔금을 입금하도록 한 공인중개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공인중개사는 임대차계약서를 쓰기 전 "등기부등본상 근저당권도 설정되지 않은 깨끗한 집"이라고 소개했다.

안씨는 확정일자와 전입신고를 했지만 주택을 점유하지 못함으로 인해 대항력이 없고 기한이익상실돼 현재 SGI서울보증이 안씨에 대해 전세금 반환의 구상권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안씨는 개인회생 절차를 고민하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처음부터 돈을 주지 않을 생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측할 수 있고 기존 임차인과 신규 임차인 둘 다 돈을 잃었기 때문에 심각한 범죄"라고 말했다.

지명수배가 내려진 집주인 김씨는 올 2월 검거됐다. 대전중부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진술을 통해 본인은 1억원을 주겠다는 말만 믿고 상부에서 지시한 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전 직장 동료를 통해 전세사기 조직원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집 작업'(전세사기 작업)에 성공하면 보수로 1억원을 받기로 한 뒤 본인 명의의 통장과 카드를 개설했다.

정작 돈을 갖고 도주한 사람은 김씨가 아닌 총책으로 밝혀졌으나, 김씨만 검찰에 기소된 후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피해금은 돌려받지 못했다. 선고 이후 검찰과 김씨 둘 다 항소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간책과 총책으로 알려진 이들은 현재까지 검거되지 않았다.

피해자 안씨는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을 상대로 민사 소송도 진행 중으로 내년 초 소송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안씨는 "공인중개사에게 중개보수를 지불하는 이유는 단순히 집을 소개만 받는 비용이 아니라 이 같은 사고 위험을 줄이는 보험"이라고 토로했다. 현행 '공인중개사법'은 공인중개사가 중개 대상물의 권리관계 등에 대한 확인·설명 의무를 가져 사고 리스크를 완화하도록 한다.

실제 공인중개사의 잘못된 대처로 피해자가 공인중개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배상 받은 사례도 있다. 2020년 전주지방법원은 공인중개사가 임차권 등 권리관계에 관한 사항을 설명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설명하지 않아 선순위임차권이 있는 사실을 알지 못한 원고가 미반환된 보증금을 8000만원 중 절반을 배상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중개업자가 고의나 과실로 설명 의무를 위반해 임차의뢰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것에 따라 공인중개사법 제30조 제1항에 의해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12.1.26. 선고 2011다638574 판결 등 참조)


 

신유진
신유진 yujinS@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재테크부 신유진 기자입니다. 유익한 기사를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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