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걸린 '미국 우선주의'… 한국 '냉가슴'

[머니S리포트 - '양날의 검' 인플레이션 감축법] ① 칩4 동맹·반도체법 이어 인플레 감축법 서명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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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미국이 당장 내년부터 중국산 전기차 대신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친환경 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키로 하면서 한국 산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내 전기차 생산기반이 없는 국내 자동차 업계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국산 원료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업계도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한국 재생에너지가 수혜를 누릴 것이란 전망이 있지만 이 마저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외에도 주요 산업의 공급망 주도권 선점과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잇따라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울며겨자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기로에 놓인 한국의 현 상황을 살펴봤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16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
▶기사 게재 순서
①드라이브 걸린 '미국 우선주의'… 한국 '냉가슴'
②인플레 감축법, 위기냐 기회냐… K-배터리 기로에
③한국 태양광·풍력, '아메리칸 드림' 기회 열리나
④보조금 끊긴 한국 전기차… 현대·기아차 '비상'
⑤장벽 쌓는 강대국… 샌드위치 신세 한국 해법은?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기술 우위를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와 첨단기술 생태계 육성에 총 2800억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 과학법'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미국·일본·한국·타이완 등 4개국 간의 반도체 동맹인 '칩4 동맹' 추진에 이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경제는 물론 정치·통상·안보 등 다양한 부문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국내 산업과 경제에 타격을 우려하면서도 이 같은 일련의 정책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부 차원에서 미국 우선주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미국을 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16일 7400억달러(약 1000조원) 규모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의료 보장 범위를 확대하자는 내용의 법안으로 에너지와 의약품 물가를 잡겠다는 목적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법안은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달러(약 500조원)를, 건강보험개혁법 보조금에 향후 2년 동안 640억달러(약 86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재원 마련을 위해 연간 수익 10억달러(약 1조3450억원) 이상인 대기업에 최소 15% 법인세도 부과하기로 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투자를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안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전기차 구매자에게는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세액공제를 지원하는데 혜택을 받는 차종 28개 중 22개가 미국 브랜드 모델이다. 사실상 미국 브랜드만 중점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전기차를 전량 국내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보조금 대상에서 빠졌다. 현재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 중이지만 2025년 완공 예정이어서 공백기간 동안 타격이 불가피하다. 올 1분기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9%의 점유율로 2위를 확보하며 시장 확대를 모색하던 현대차·기아의 사업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배터리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선 북미에서 생산된 배터리 부품 비중을 2023년 50%에서 2029년 100%까지 늘려야 한다. 미국 생산 배터리 광물 비중(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생산도 포함)도 2023년 40%에서 2027년 80%로 확대해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중국산 원료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 3사는 당장 수입 대체국가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기업들의 국내 투자와 일자리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이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미국이나 미국의 핵심 교역국에서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미국과 다른 나라에 공장을 세우는 반면 국내에선 투자를 늘리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과로 국내 주요 기업들의 해외 탈출이 가시화될 수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공동화와 일자리 감소를 우려해야 할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잇단 미국 우선주의 법안에 '한숨'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 기조를 노골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미국 반도체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마련된 반도체 과학법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자국 반도체 연구·개발·제조 등 분야에 527억달러(약 71조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반도체 장비나 기술의 중국 수출과 투자를 금지하는 규정도 포함하고 있어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중국 내 신규 시설투자나 증설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여기에 4개국(미국·한국·일본·타이완) 반도체 공급망 동맹, 이른바 '칩4'도 추진하고 있다. 팹리스(미국) 파운드리(한국·타이완) 소재·장비(일본)에 각각 강점이 있는 4개국이 모여 반도체 공급을 위해 협력하자는 취지다.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목적이어서 한국의 부담감을 높이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칩4 참여가 '상업적인 자살행위'라며 경제적인 보복 방침을 시사하고 있지만 한국 입장에선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9월 초 열릴 예정인 예비회의를 거쳐 칩4 가입을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시행한다. / 사진=로이터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미국의 잇단 자국 우선주의 정책은 미국이 주도하는 시스템을 국제 통상 시스템보다 우위에 있게 만들어 궁극적으론 미국을 따라오도록 하려는 목적"이라며 "한국 입장에선 미국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참여를 하는 게 맞지만 국내 산업에 직접적인 타격이 올 수 있는 법안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방어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예를 들어 반도체 공급망 문제의 경우 경쟁국인 타이완과 연대해 미국에 의견을 개진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한국이 제조 우위를 가진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확실한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우려를 낳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상당한 경각심을 갖고 이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미국의 자국 산업 우선주의 경향의 첫 시작으로 보고 있다"며 "앞으로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지에 대해 매우 깊이 있게 업계와 고민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한듬
이한듬 mumford@mt.co.kr

머니S 산업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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