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에 기죽은 원화, 줄어든 외환보유고 '비상등'

[머니S리포트-내년이 더 두려운 대한민국 경제②] 외환위기 트라우마, 불안한 정부 낙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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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킹달러'(King Dollar)가 회자될 만큼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세계 경제가 혼란에 빠졌다. 강달러로 원화를 비롯한 다른 통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세계 경제가 침체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가계 빚이 사상 최대치인 한국에도 경고음이 들어왔다. 강달러 유탄을 맞은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 폭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다. 외환 곳간은 갈수록 줄고 있어 또 한번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 결단을 내려야 하지만 이미 불어날대로 불어난 가계 빚으로 인해 대출자들의 이자 폭증이 불가피하다. 빅스텝 등 통화긴축 가속으로 인해 경기둔화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가운데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에 짓눌린 대한민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 베이비스텝 or 빅스텝… '금리 딜레마'에 빠진 한은
② '킹달러'에 기죽은 원화, 줄어든 외환보유고 '비상등'
③ '금리의 역습'… 신용점수 1000점 육박해도 이자는 벌써 7%


#. 1997년 10월27일 모건스탠리증권은 '아시아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라'는 긴급 전문을 보냈다. 홍콩의 페레그린증권은 '지금 당장 한국을 떠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굳게 믿는다"는 말을 되풀이할 때다. 같은 해 11월21일 당시 임창열 신임 경제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기초체력을 믿었던 한국 경제가 구제금융 국가로 전락하는 데 걸린 시간은 25일에 불과하다.

#. 2008년 9월30일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국가재정운용계획 브리핑에서 "세계 경제가 점차 회복되고 국내 경제는 정상 궤도에 복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후 10월22일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장에서 그는 "대외여건을 살펴보면 경우에 따라 외환위기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고 경제 전망을 바꿨다. 국회의원들은 "불과 22일 만에 판단이 다른 이유가 뭐냐"고 따져물었고 강 장관은 "경제위기는 외국에서 시작됐다. 세계가 위기에 들어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외환위기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역대 환율이 1400원을 넘은 것은 1997~1998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이어 세 번째다. 원화가치는 올 들어 20%가량 곤두박질쳤고 외환보유고는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대외신인도 안전판으로 불리는 외환보유액 감소는 3고(고물가·고금리·고유가) 위기에 직면한 한국의 경제를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과도하게 불안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두 번의 경제위기처럼 외환시장의 위기 신호를 놓쳐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강달러 속도, 심상찮은 원화 약세


/그래픽=김은옥 기자
원/달러 환율은 지난 1월6일(1201.0원) 1200원을 넘은 후 6월23일(1301.8원) 168일 만에 1300원을 돌파했다. 반면 9월22일(1409.7원) 1400원을 넘기까지 91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최대 1500원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일방적인 달러 강세 속에 원화 가치가 다른 국가 통화와 비교해 저평가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7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101.4다. 실질실효환율은 원화가 다른 나라의 화폐보다 실질적인 구매력을 가졌는지 보여 주는 환율이다.

2010년 값을 100으로 보고 100 이상이면 고평가, 100 이하이면 저평가로 판단한다. 원화는 100을 넘은 반면 유로화는 90.1, 엔화는 58.7에 각각 그친다. 달러가 129.7인 것과 비교하면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이 낮지만 다른 통화 대비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는 "원화 가치만 떨어졌던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며 "과도하게 불안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인 1400원 선을 뚫은 후 가파르게 올라 안심하기 이르다. 무섭게 오르는 달러 기세에 정부와 외환당국의 구두개입도 원화 가치를 살리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올해 외환당국은 급등하는 환율을 막기 위해 5차례 공식 구두개입에 나섰다. 지난 9월16일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위협하자 실개입도 나섰다. 이날 오후 외환시장은 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달러 매도 물량이 쏟아졌고 원/달러 환율은 5분 만에 10원 가까이 급락했다. 하지만 달러 강세에 원/달러 환율은 9월26일 1430원을 돌파했다.

중국 위안화도 원화 약세를 부추긴다. 9월27일 위안화의 달러 대비 기준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0424위안(0.56%) 올린(위안화 가치는 하락) 7.0722위안이다. 2020년 6월 이후 최저치다.

위안화는 역외시장에서 '1달러=7위안'선이 깨진 데 이어 역내시장에서도 달러당 7위안 선을 웃돌고 있다. 일본 엔화는 달러화 대비 143.91엔까지 떨어졌다. 최근 일본 정부는 외환시장에서 3조엔(약 30조원)을 매수했으나 미국과 일본의 기준금리 격차가 벌어져 원/엔화는 145엔을 바라보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안화와 엔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자본이 아시아에서 대거 이탈하는 트리거(방아쇠)가 될 것"이라며 "10월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까지 오를 것으로 보여 원화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을 낙관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외화 곳간, 올 들어 275억달러 감소… '통화스와프' 필요성


'외환 곳간'이 줄어드는 상황도 안심할 수 없다. 정부가 시장 개입에 사용할 수 있는 외화실탄이 부족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외환보유액은 4364억3000만달러로 전월 말(4386억1000만달러)보다 21억8000만달러 줄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곳간에서 빠져나간 외화는 274억8000만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말 대비론 5.9% 이상 감소한 셈이다.

한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지난 7월 기준 1123억달러로 지난해 말(1312억달러) 대비 189억달러(14.4%) 줄었다. 상반기 평균 환율(1233.9원)로 단순 환산하면 지난 7개월 간 약 23조3000억원의 미 국채를 팔아치운 셈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외화 안전판 역할을 하는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무역수지 개선에 노력하는 등 달러 유동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긴 후에 어김없이 경제불황이 닥친 점을 감안할 때 외환보유고가 줄어드는 결코 상황을 좌시해선 안된다"며 "외환보유고를 늘려 경제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환시장은 심리적 요인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에 안정감 있는 정책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폭주하는 달러를 잡을 열쇠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해법으로 썼던 한·미 통화스와프를 거론한다. 정부는 아직 한·미 통화스와프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원화의 하락폭을 잠재울 심리적 방패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실제 원/달러 환율은 2008년 10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뒤 1500원에서 하루 만에 177원 떨어졌다. 2020년 3월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된 후 1272.50원이던 환율은 다음날 1232.00원을 기록하며 40원 가까이 하락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인 강달러 추세에 통화스와프 효과가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물론 미국이 한국과 단독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가능성도 낮은 게 사실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외환보유고를 두 배 늘리고 한·미, 한·일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2개의 방어막을 준비해야 한다"면서도 "정부가 나서 유동성 우려를 해소하는 등 시장의 불안 심리를 완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꼬집었다.


 

이남의
이남의 namy85@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금융팀 이남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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