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놓고 싸운다" 막강 이기자부대, 69년 역사 남기고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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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사단 이기자 페스티벌 ⓒ News1 홍성우 기자
27사단 이기자 페스티벌 ⓒ News1 홍성우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이겨놓고 싸운다"는 선승구전(先勝求戰) 정신의 육군 제27보병사단 '이기자 부대'가 창설 69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기자 부대의 명성은 과거형으로 남게 됐지만 부대 전역자와 주둔지 일대 주민은 물론 국민들에게 '이기자 정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육군 27사단은 지난 11월30일부로 공식 해체됐다.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27사단은 제7보병사단, 제15보병사단과 함께 있었던 제2군단 예하부대로 중부전선을 책임지던 예비사단이었다.

27사단이 주둔했던 화천 일대에는 동원부대인 제66보병사단이 이동한다. 27사단 직할대와 제77보병여단, 제78보병여단, 제79보병여단, 포병여단의 병력과 장비는 인근 7사단과 15사단 등으로 넘어간다.

27사단의 해체는 2010년대부터 논의되기 시작하다 2020년 11월 국방부의 '국방개혁 2.0' 계획 발표에 따라 공식화됐다. 국방개혁은 우리 군을 첨단 과학기술 기반의 정예군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지만, 부대 해체는 출산율 저하로 인구절벽 시대가 도래한 것과 큰 연관이 있다.

27사단장을 지낸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국방개혁이 필요하고 부대를 축소·조정해야하는 건 이해하지만 하필 이기자 부대가 해당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과거 27사단에서 근무한 한 육군 장교는 "많은 근무지 중 27사단에서 특별히 추억이 많은데 이젠 부대 마크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허전하다"며 "이기자 부대는 군 생활을 마치고 죽을 때까지 내 자랑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개혁 과정에서 해체되는 부대가 27사단이 유일하진 않으나, 유독 "이기자 부대가 그립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건 '육군에서 가장 훈련이 혹독한 부대 중 하나'라는 명성 때문이기도 하다.

27사단 유격훈련장 비석에 적힌 '훈련은 무자비하게'라는 문구는 27사단의 문화를 상징한다. 전방 사단이 아닌 예비 사단이기 때문에 사실상 부대의 주임무가 전투 훈련이다. 대부분의 27사단 장병들은 적어도 2개월에 한 번 꼴로 크고 작은 훈련을 받는다.

27사단 주둔지는 대성산 등 해발 1000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악지대가 있는 전형적인 분지 지역이다. 겨울이 되면 영하 20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춥고 여름에는 덥다. 옛 군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난로인 '페치카'가 전군 최초로 보급된 곳이 27사단이다.

전 전 사령관은 "강한 훈련을 하는 게 이기자 정신의 뿌리이기 때문에 그 어떤 부대보다 훈련을 제대로 했다"며 "훈련 때는 다들 힘들어했지만 나중엔 모두들 '보람 있는 일을 했다'라고 말하며, 전역자들의 긍지와 전우애도 남다르다"라고 전했다.

2009년 전 전 사령관이 제34대 사단장으로 취임한 후 27사단은 더욱 전투적인 부대가 됐다. 사단장을 비롯한 전 장병이 '훈련에 전념한다'는 목표 아래 삭발 수준으로 머리를 깎았다. '이기자 컷'으로 유명했던 이 머리는 해병대의 '돌격머리'와 비슷해 당시 장병들이 해병대에게 오해를 산적도 있었다고 한다.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도로에 걸려 있던 27사단 해체 반대 현수막. 2019.9.6/뉴스1 ⓒ News1 홍성우 기자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도로에 걸려 있던 27사단 해체 반대 현수막. 2019.9.6/뉴스1 ⓒ News1 홍성우 기자


27사단은 정전협정 2달 뒤인 1953년 9월18일 강원도 양양에서 창설됐다. '이기자'라는 부대 명칭은 초대 사단장인 고(故) 이형석 장군이 '더 이상 한국전쟁(6·25전쟁) 같은 국난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라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직접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27사단은 전군 유일의 '행동실천형' 명칭을 가진 부대, 전국 최초의 '우리말 이름' 부대이기도 하다. 또한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뜻을 담아 경례 구호를 '이기자!'로 정했는데, 이는 전군 유일의 3음절 경례 구호다.

27사단은 1965년 베트남전 파병 최초의 전투부대인 비둘기대대를 파병한데 이어 1971년 '득봉 대침투작전'에 참가해 공비 3명을 사살했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소탕작전'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우는 등 총 8회의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이기자 전우회 등은 27사단의 상징성이 컸던 만큼 군 당국이 부대 '해체'가 아닌 '해제' 조치를 해야 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부대 '해제'는 부대 자체는 당장 없애더라도 필요한 경우 부대 재창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미군이 전쟁 종료 후 부대 축소 과정에서 많이 적용한 방식이다.

이기자 전우회의 한 회원은 "한때 66사단이 해체되고 27사단으로 통합개편되는 계획도 거론된 것으로 알아 기대했으나 아쉽다"며 "현재로선 부대 '해제'로 갈 길이 없어 보이지만 이기자 전통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27사단은 유명인들의 부대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GOD의 김태우, 빅뱅의 대성, 비투비의 서은광, B1A4의 신우 등 가수들과 배우 한석규·엄태구·유승호·유준상·이경영·현봉식 등이 복무했다. 이들은 전역 후 방송 등을 통해 부대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인터넷 상에선 과거 존재했던 병설 유치원 '이기자 유치원'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유치원 명칭이 어린이들의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데다 사단장이 원장 선생님, 원감이 군종참모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유치원의 교육과정은 일반 유치원과 같았고 유격 등 군사훈련은 당연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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