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北 '9번째 핵국가' 이미 현실… 실천가능한 미래 설계해야"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 22주년 기념 학술회의 강연
"북한 '안전보장' 요구에 美 '굴복할 수 없다'는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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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북한은 이미 세계 9번째 핵국가가 됐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통일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 전 장관은 8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2주년 기념 학술회의'에 참석, '새로운 갈등과 대결의 국제정세와 한반도 평화'에 관한 기조강연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5개 핵보유국과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사실상 핵보유국 3개국에 이어 북한이 핵개발에 성공한 상태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한 기존 통일정책은 "비현실적"이란 게 송 전 장관의 지적이다.

송 전 장관은 지난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우리 측 대표로 활동하며 '9·19공동성명' 채택을 이끌어냈다. 이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시 송 전 장관에게 "평생 추구해온 한반도 평화의 길을 국제적으로 합의한 문서가 바로 9·19공동성명"이라며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남북이 핵이 없는 한반도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을 찾아가는 '적극적 평화'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17년 말 북한이 사실상 핵국가가 되면서 사정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며 지금 김 전 대통령을 당시 만난다면 "북한이 자의든 타의든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까워 졌다"는 등의 얘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 전 장관은 "우린 통일을 '국가 야망'으로 내세우고, 통일한국을 민족이 회복해야 할 '국가 정체성'으로 간주하는 걸 지극히 당연시해왔다. 그러나 분단 77년을 뒤돌아보면 우린 목표는 갖고 있었지만 그곳에 도달할 수단을 만들지 못했다"며 "수단이 없는 목표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송 전 장관은 특히 "통일을 논할 때 흔히 남북 간의 접근과 변화를 통한 통일이나 북한의 붕괴에 따른 한국 주도 통일을 상정하지만, 두 경우 모두 북한 핵문제 해결 전엔 진행되기 어렵다"고도 말했다.

이 때문에 현실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바탕으로 "실천 가능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게 송 전 장관의 지적이다.

송 전 장관에 따르면 북한이 그간 핵포기 조건으로 내세웠던 '안전보장'엔 △북미 수교와 '적대시 정책'(대북제재·한미연합 군사훈련 등) 철회와 △한미동맹 해체 및 주한미군 철수, 그리고 △미국 등의 인프라 건설 지원까지 정치·군사·경제적 조치가 모두 포함된다. 반면 미국은 "상대국의 핵위협에 굴복한다는 신호를 줄 소지가 있는 조치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에 지난 30여년 간 북한과 계속 대립해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그는 "북한은 상황에 따라 다른 언어로 포장하고 수위도 조절해왔지만 요구조건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그는 "북한이 이런 요구를 굽히지 않고 미국과의 대립·압력을 견뎌온 배경의 핵심 축엔 중국의 안보이익도 작동하고 있다"며 "중국은 '정권 생존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 장치를 받아내기 전엔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북한을 궁지로 몰 경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다"고 진단했다.

송 전 장관은 특히 북한의 경제규모가 중국의 500분의1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국은 미미한 지원으로도 북한의 생존을 지탱해줄 수 있다. 북한을 자국 영향 아래 둠으로써 얻는 안보적 이익에 비하면 가성비 높은 투자인 셈"이라고도 말했다.

송 전 장관은 "결국 미·중 대립이 지속되는 한 북한 핵문제 해결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며 "핵 역사상 자력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붕괴해 다른 세력에 흡수된 경우도 없다"고 강조했다.

송 전 장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선반'이 아닌 '책상' 위에 두면서 인내심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겠지만, 그러잖아도 희박한 통일 가능성은 더 멀어지고 허상을 유지하는 대가만 가중된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송 전 장관은 "이제 우린 남북관계를 '보통국가' 간의 정상적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남북한도) 보통국가 사이처럼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원리에 따라 공존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정상적 국가 관계엔 감성이 개입할 여지가 축소되고 이성적 행동양식이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며 "그래야 객관성 있는 국제적인 규범이 적용되는 관계가 생성되고 시간과 함께 관계의 확장 가능성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송 전 장관은 "한반도란 좁은 공간에서 핵을 가진 정상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지역 안보를 위한 다자적 핵협상 전개 △미국의 확장억제 장치 확립+한국의 자체 방어역량 확보(3축 체계 등)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의 핵 연료주기(NFC·우라늄 채광부터 최종적 영구 처분 될 때까지 일련의 단계로 구성된 순환과정) 구축을 병행 추진하며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송 전 장관은 "대북정책 전환은 어느 한 정권이 마음먹는다고 이뤄질 일이 아니다. 방향을 바꾼다고 해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뒤집어놓을 개연성이 크다"며 현 대통령 중심제를 중대 선거구제로 구성된 내각제 정부로 바꾸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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