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성과없이 변죽만 울리는 신약개발… 적응증 확대의 현주소

[머니S리포트-바이오기업 신약은 만병통치약?①] "뭐가 나오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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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글로벌 의약품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선 시장성 높은 신약후보 물질을 많이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제약바이오 기업은 '적응증'(약물로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병) 확대 전략을 적극 구사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MSD의 면역항암제(면역세포를 통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약물) 키트루다처럼 하나의 물질에서 다양한 치료제로 개발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신약후보 물질이 키트루다가 될 수는 없다. 하나의 적응증으로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도 못한 채 무분별하게 적응증 확대에 나서면 오히려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적응증 확대 전략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와 폐해를 살펴보고 전문가들로부터 제언을 들어봤다.
신약후보 물질 발굴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만큼 제약바이오 기업이 하나의 물질을 다양한 질환에 활용하는 '적응증 확대' 전략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다만 적응증 확대 전략에 대해 수 년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업이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악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수년째 성과없이 변죽만 울리는 신약개발… 적응증 확대의 현주소
②당뇨약이었는데… 알고 보니 다이어트약?
③신약후보 물질의 무제한 적응증 확장… 시장 신뢰 잃는 자충수


제약바이오 기업 가치는 신약후보 물질 가치에 비례한다. 유망한 신약후보 물질을 많이 보유할수록 기업가치는 올라간다. 특히 신약후보물질 하나를 발굴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제약바이오 기업으로선 하나의 물질을 다양한 질환에 활용하는 '적응증 확대' 전략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과정이 지지부진한 하나의 신약후보 물질에 너무 많은 적응증으로 개발하는 것이 오히려 후보 물질의 유효성에 대해 신뢰를 하락시킬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에이치엘비(HLB)는 미국 시장을 겨냥해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을 다양한 암종의 치료제로 연구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본업인 신약 개발보다 자금을 투자받아 외형 확장에 집중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을 보낸다. 인포그랙픽은 HLB그룹 기업 지배구조. /그래픽=김은옥 기자


HLB, 만능 항암제 개발?


항암신약 개발기업인 에이치엘비(HLB)는 표적항암제(정상세포와 차이 나는 암세포의 특정 부분을 표적으로 해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약물) '리보세라닙'을 다양한 암종 치료제로 연구 개발하고 있다. 중국에선 현지 파트너사 항서제약, 미국은 자회사 엘레바테라퓨틱스, 한국은 자회사 HLB생명과학을 통해 각각 폐암·위암·유방암·간암·대장암·난소암·선낭암·교모세포종(뇌종양의 일종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종양 중 치명률이 높은 난치병) 등의 항암제와 함께 시력 저하를 유발하는 퇴행성 질환인 황반변성 치료제 등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2022년 12월엔 반려견 유선암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 시험에서 약물 투여도 시작했다.

HLB는 리보세라닙을 이처럼 많은 적응증을 통해 항암제로 개발하는 이유는 이 표적항암물질이 지닌 기전(mechanism)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종양세포는 성장을 위해 산소와 영양분 공급에 필요한 신생혈관 형성을 목적으로 혈관내피세포 성장인자(VEGF)를 분비하는데 리보세라닙은 이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HLB 관계자는 "성공률이 낮은 신약 개발에서 신약후보 물질을 하나의 적응증으로만 개발하는 '원샷원킬' 전략은 회사는 물론 주주들에게 위험한 전략으로 판단해 리보세라닙 심층개발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보세라닙은 중국에서 위암·간암 치료제로 활용되고 있음에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들을 수 년째 넘지 못하고 있다. 리보세라닙은 2004년 미국 어드벤첸연구소가 개발하기 시작한 표적항암제다. HLB는 2007년 미국 자회사 엘레바테라퓨틱스를 통해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판권(중국 제외)을 이전받았고 2020년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특허권을 확보했다. 리보세라닙은 2014년 중국에서 위암 3차 치료제로 승인받은 후 판매하고 있다. 2020년 12월 간암 2차 치료제로도 품목허가를 받고 2021년 시판을 시작했다.

하지만 엘레바테라퓨틱스가 주도하는 FDA 품목허가 획득 절차에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19년 6월 위암 치료제 임상 3상 시험을 마쳤지만 FDA로부터 여러 차례 추가보완을 요청받는 등 3년이 넘도록 품목허가 신청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HLB는 2022년 간암 치료제 임상 3상 시험과 선낭암 치료제 임상 2상 시험을 마친 뒤 FDA 품목허가 신청도 준비하고 있다. HLB는 조만간 FDA에 품목허가를 신청한다는 입장이지만 위암의 경우처럼 실제 신청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HLB 관계자는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서 품목허가 신청 과정을 챙기고 있다"며 "기술수출 없이 품목허가 신청 절차를 진행하는 만큼 FDA와 적극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HLB가 리보세라닙의 적응증 확장을 시도하면서 임상 시험 진행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받아 리보세라닙 개발보다 기업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인 게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HLB는 2022년 주주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단행, 2409억원을 모았고 신주인수권부 사채(BW)와 전환사채(CB)를 발행해 652억원을 확보했다. HLB제약은 2022년 8월 200억원 규모의 BW를, HLB생명과학은 같은 해 6월 BW 1000억원어치를 각각 발행했다.

HLB는 이렇게 모은 자금을 임상시험 수행기관(CRO) 노터스 인수에, HLB생명과학은 진단기기 업체 에임 인수에 각각 활용했다. HLB제약은 카티세포(CAR-T세포·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제 개발기업 베리스모테라퓨틱스에 지분투자했다.

젬백스앤카엘은 신약후보 물질 GV1001을 항암, 전립선 비대증, 알츠하이머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GV1001은 2014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췌장암 치료제로 조건부 품목허가를 받기도 했지만 2020년 8월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해 품목허가가 취소되며 아직 정식 치료제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젬백스앤카엘 본사. /사진=젬백스앤카엘


젬백스앤카엘 'GV1001', 뭐 하나 딱 떨어지지 않는 신약물질


신약 개발기업인 젬백스앤카엘은 신약후보 물질 'GV1001'을 다양한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항암제 리보세라닙의 타깃 암종을 확장하는 HLB와 달리 젬백스앤카엘은 GV1001을 항암제,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젬백스앤카엘 관계자는 "GV1001이 항암, 항염, 항산화 등의 다중기전을 보유하고 있어 다양한 적응증으로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020년 12월 말 췌장암 치료제 임상 3상 시험 결과보고서를 수령한 뒤 약 2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품목허가를 신청하지 않으면서 적응증 확장에만 나서고 있어 업계에선 의문을 제기한다. 바이오기업이면서 신약 사업으로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젬백스앤카엘과 관계사 삼성제약이 췌장암 치료제로 품목허가를 얻고 수익을 올리는 것에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삼성제약은 2020년 3월 연간 8000만바이알(주사 유리병) 규모의 GV1001을 생산할 수 있는 전용 공장을 구축했지만 임상 시험용 제품을 생산하는 것 외엔 사실상 가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젬백스앤카엘은 GV1001의 국내 판권을 삼성제약에 이전해 매출에 따른 로열티를 수령한다.

젬백스앤카엘 관계자는 "조건부 품목허가를 취소받은 적이 있어 정식 품목허가 신청 절차에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며 "현재 국제학술지에 논문 투고를 위한 작업이 진행 중으로 (투고) 이후 품목허가 신청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젬백스앤카엘은 2022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GV1001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임상 3상 시험 계획을 승인받았다. 다만 1년여가 지났음에도 아직 임상 시험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해 2월엔 기존 항암제와 병용요법을 통해 재발성 또는 전이성 직결장암(대장암) 치료제 가능성을 확인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암학회지에 싣기도 했다. 3월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임상 3상 시험을 마쳤으며 현재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12월29일엔 식약처에 '진행성 핵상 마비'(진행성의 파킨슨증과 안구운동의 이상이 있는 환자에서 감별을 요하는 질환) 치료제 임상 2a상 시험계획을 신청했다. 이전엔 비소세포 폐암과 전립선암에 대해서도 임상 2상 시험을 마쳤다.

GV1001은 노르웨이 바이오기업인 젬백스가 1989년부터 췌장암 치료제로 개발한 신약후보 물질이다. 국내 반도체 필터 제조회사였던 카엘이 2008년 GV1001을 보유한 젬백스를 1000만달러에 인수함으로써 GV1001에 대한 권한을 확보했다. 젬백스앤카엘은 이후 영국에서 췌장암 치료제로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했는데 2013년 실패했다. 그럼에도 식약처에 GV1001을 췌장암 치료제로 품목허가를 신청했고 2014년 9월 임상 3상 시험 결과보고서 제출을 조건으로 품목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조건부 허가가 만료하는 2020년 3월까지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해 같은 해 8월 조건부 품목허가는 취소됐다.

기존에 출시했거나 개발 중인 약물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려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10여곳이 넘지만 개발에 성공한 곳은 아직 단 한 곳도 없다. 인포그래픽은 약물 재창출 방식의 국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진행 현황. /그래픽=김은옥 기자


너도나도 뛰어든 코로나 치료제… 성과는 감감무소식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출몰로 치료제 개발에 국내의 많은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뛰어들었다.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새로운 후보 물질을 발굴하기보다는 기존 치료제 또는 다른 적응증으로 연구개발 중이던 신약후보 물질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려는 약물 재창출 시도가 많았다.

이미 다른 용도의 치료제로 사용 중인데다 약물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 1상 시험을 거친 신약후보 물질의 경우 추가로 안전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치료효능만을 확인하면 돼 조기 개발에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였다.

약물 재창출 방식으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나선 기업은 10여곳이 넘지만 이들 기업의 주가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기대감만으로 치솟았다.

신풍제약의 경우 2020년 3월 말라리아 치료제로 활용되고 있는 '피라맥스'를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영향으로 주가는 2020년 1월2일 종가 기준 7320원에서 그해 9월25일 21만4000원까지 치솟으며 시가총액은 한때 10조원을 넘었다. 현재 이 회사 주가는 횡령·배임 사건까지 터지며 2만원 선으로 90% 이상 빠졌고 시총도 1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2020년 3월26일 식약처에 췌장암 치료제로 개발하던 CG-745의 단독요법 및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병용요법의 임상 2상 시험계획을 신청한 것만으로 주가가 급등했다. 2020년 3월25일 종가 1만2550원에서 31일 종가 1만6800원으로 4거래일 만에 33% 이상 뛰었다.

하지만 이들 기업 중 코로나19 치료제 성과를 낸 곳은 아직 없다. 신풍제약의 경우 2021년 7월 임상 2상 시험 결과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어 막바지에 접어든 임상 3상 시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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