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사치의 덫'에 걸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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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과거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사치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만연해졌다. 소득이 그리 높지 않은 소비자 중에서도 고가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이 같은 사치행태는 불황의 한파도 비껴가고 있다. <머니위크>는 소비자들이 사치를 쫓는 이유와 사치행태를 부채질하는 럭셔리마케팅 등 사치에 열광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집중 조명했다.

“우리 결혼하자. 집과 모자란 결혼비용은 대출로 마련하면 될 거야. 시작은 부족하더라도 우리 닮은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자.” 

이 문장의 키워드는 결혼, 대출, 행복이다. 다소 부조화스런 단어의 조합이지만 요즘 시대 ‘결혼=대출’ 공식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혼에 대출이 끼지 않으면 남들만큼 평범한 신혼생활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진 돈이 2억원이라고 해서 2억원짜리 집을 구하는 젊은 세대는 거의 없단 소리다. 10명 중 8~9명은 대출을 더해 그럴듯한 시작을 원한다.

여기에 ‘남의 시선’이 더해지면 얘기는 더 디테일해진다. 주변 친구가 결혼한 곳보다 꿀리지 않는 예식장에서 결혼하고, 무리해서라도 외제차를 타며, 내 아이를 자랑스럽게 빛내줄 S사의 유모차 정도는 끌어줘야 비로소 행복이란 단어로 귀결된다. 결혼과 동시에 빚을 지지만 남들보다 떨어지는 삶은 살 수 없다는 게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다. 능력 밖의 허례허식에 치중하는 사례가 주변에서 종종 눈에 띄는 이유다.

[커버스토리] '사치의 덫'에 걸린 사람들
◆ 예비신부: 일생에 한번뿐인 결혼, ‘크고 화려하게’

# ▲이름: 박서아(가명) ▲나이: 31세 ▲직업: 프리랜서 아나운서 ▲연봉: 2000만~3000만원 ▲특이점: 공기업에 다니는 남자친구와 결혼준비 중.

예식장 크기와 사랑의 크기는 비례할까. 상식적으론 그럴 리 없지만 결혼 준비과정에선 종종 비상식이 통하곤 한다. 오는 5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박서아씨. 박씨는 최근 예식장을 변경했다. 주변의 시선, 평생 한 번 뿐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얻어낸 결정이다.

애초 박씨는 공기업에 근무하는 예비신랑의 직장에서 예식을 치를 생각이었다. 대관료 0원에 식대 3만원. 보증인원 300명을 예상할 경우 900만원이면 전체 예식비용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일반예식장 비용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저렴한 수준. 가격은 물론 예비신랑이 안정적인 직장에 다닌다는 나름의 자부심까지 더해져 초반에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예식장을 결정한 뒤 점점 ‘남의 결혼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려하고 웅장한 호텔예식. 어린 시절 꿈꾸던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점점 박씨의 뇌를 지배했다.

결국 박씨는 강남에 위치한 한 고급 호텔로 식장을 변경했다. 대관료 1200만원과 식대 1인당 6만5000원. 의무적으로 보증인원 350명을 채워야 했다. 여기에 당일 발렛주차비용과 음료 및 주류의 부대비용까지 더해져 추정된 예상금액은 약 3800만원. 식장 변경 전에 비해 예식비용이 4배 넘게 뛴 셈이다.

“일생에 한번만 하는 결혼식인데 멋있고 화려한 곳에서 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더라고요. 예식장을 바꾸고 난 뒤 지인에게 더 자랑스럽게 말하게 되고 모두 저를 부러운 눈으로 보는 것 같아 만족해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씨의 과시욕은 호텔예식에 맞는 웨딩드레스와 한복은 물론 예물로도 이어졌다. 그녀가 결혼을 위해 모아둔 돈은 4000만원. 초기에는 총 3000만원을 결혼비용에 쓰고 1000만원은 저축할 생각이었으나 어느새 예상비용이 8000만원을 넘었다.

[커버스토리] '사치의 덫'에 걸린 사람들
◆ 사업가: 매달 리셋되는 잔고, ‘차만큼은 허세를 타고’

# ▲이름: 민성욱(가명) ▲나이: 36세 ▲직업: 자영업자 ▲연 수입: 8000만~1억원 ▲특이점: B사 G**(2억원대), A사 A*(8000만원대), R사 R**(1억원대) 등 수입차 3대 보유.

강남일대를 휘젓고 다니는 외제차들. 민씨의 차도 그중 하나다. 민씨는 소규모로 마케팅회사를 운영 중인 개인사업자. 그는 거래처와 약속이 있을 때마다 자신이 보유한 3대의 외제차를 번갈아 타고 미팅에 참석한다. 차가 곧 그의 얼굴이자 회사의 얼굴이라 믿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민씨가 구입하고 되팔기를 반복한 수입차만 5대에 이른다.

연봉 1억원에 사장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민씨가 운영 중인 회사의 직원은 모두 4명. 매달 벌어들이는 평균 수익 2000만원에서 직원들의 월급과 사무실 월세, 기타 부대비용을 제외하면 본인에게 떨어지는 순익은 800만원 남짓이다.

이 중 400만원이 외제차 리스비용으로 빠져나간다. 나머지 400만원으로 아파트대출금을 갚고 부인과 아이의 생활비를 감당하고 나면 매달 0원으로 리셋되는 삶이다. 저축은 남의 나라 얘기. 말이 좋아 사장이지 일반 월급쟁이의 삶보다도 못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민씨는 보유한 수입차를 처분할 생각이 없다.

“비즈니스 거래 시 어떤 차를 타느냐가 매우 중요해요. 차종에 따라 계약이 성사되기도, 틀어지기도 할 정도죠. 저처럼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차까지 저렴한 걸 타면 무시당하기 일쑤예요. 반면 비싼 차를 타면 회사가 잘 나간다고 생각하고 투자나 거래하려는 사람이 많아요. 외제차를 타고 동네만 나가도 우러러보는 사람이 많거든요. 이런 맛에 빠지면 절대 국산차는 못 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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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업주부: 공포의 유모차 가격, 그보다 무서운 시선

# ▲이름: 이승하(가명) ▲나이: 30세 ▲직업: 전업주부 ▲소득: 없음 ▲특이점: 내 아이만큼은 최고로 키우고 싶은 초보맘.

“아이를 낳고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8개월 된 딸을 둔 이승하씨는 유명 외국브랜드의 유모차를 알아보는 데 여념이 없다. 눈여겨본 상품은 200만원대의 E사와 S사 제품. 아이를 낳기 전에는 200만원을 호가하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게 허세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애를 낳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엄마들이 모이는 놀이터나 카페 등은 사실상 ‘유모차 품평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씨는 시부모가 선물한 50만원짜리 유모차를 놀이터에 끌고 나갔다가 굴욕 아닌 굴욕을 맛봤다. 다른 엄마들은 모두 유명 수입브랜드의 유모차를 끌고 나와 이씨의 유모차를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본 것.

“‘왜 명품브랜드가 아니지?’라는 시선으로 저를 이방인 보듯 쳐다보더라고요. 그 순간 아이를 사랑하는 제 마음까지 저렴한 유모차와 함께 작아지는 듯 보였어요. 그때 ‘아!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엄마들 사이에서 왜 유모차가 명품백보다 후한 대접을 받는지 느낀 순간이었죠.”

이씨는 결국 큰마음 먹고 S사의 250만원대 신상 유모차를 구입했다. 남편의 월급이 생활비의 전부인 터라 남편을 겨우 설득해 할부 12개월로 결제할 수 있었다. 유모차를 바꾸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동네의 마트만 나가도 주변으로 엄마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씨의 만족감도 잠시. 갓난아이부터 시작된 수입산 경쟁은 유모차에서 그치지 않았다. 엄마들은 어느새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 태울 어린이용 외제 전동자동차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역시 수백만원대. 유모차는 끝이 안 보이는 사치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설아
김설아 sasa7088@mt.co.kr

머니S 산업1팀 재계 담당 기자.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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