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머니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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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선호도와 평가에 있어 일반 대중과 영화계 전문가 사이에서 가장 큰 괴리를 보이는 감독은 홍상수 감독이다. 그가 만든 영화들을 놓고 대부분의 사람은 차가운 반응을 나타내지만 평론가들은 매우 호의적이다.


<씨네 21>은 '2017 한국영화 베스트 10'을 선정하며 홍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1위에, <그 후>를 7위에 올렸다. 지난해 개봉한 수많은 영화 중 홍 감독의 작품이 두편이나 들어간 것이다. <씨네 21>이 베스트 1위로 홍 감독 영화를 선정한 것은 2011년 <북촌방향>부터 2012년 <다른나라에서>, 2013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4년 <자유의 언덕>, 2015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까지 5년이나 이어졌다.
영화제에서도 홍 감독 영화는 꾸준히 상을 받았다. 초기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강원도의 힘>(1998년, 쳥룡영화상 감독상)부터 최근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년, 베를린영화제 여자연기자상), <그 후>(2017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대상·남우주연상)에 이르기까지 거의 해마다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반면 대중은 그의 영화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흥행 성적도 저조해 최근 10년간 모든 영화 관객수가 수만명 이하였다. 최근 개봉작 <그 후> 관객수는 1만8648명에 그쳤다. 2016년부터 상영 스크린수가 과거에 비해 몇배 이상 증가했지만 관객수는 늘지 않았다. 오히려 스크린당 관객수가 몇분의1 이하로 줄었다. 영화 편당 매출액은 수억원대에 그친다.

◆대중이 외면하고 평론가가 택한 감독

[이건희칼럼] 지금도 틀리고 그때도 틀렸다?

그럼에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직접 제작사(전원사)를 차려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초저예산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불과 10여명의 스태프와 평균 1억원 내외 제작비로 연간 1~2편씩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매년 짭짤한 수익을 거둔다.
촬영기간은 열흘 남짓으로 매우 짧고 대략적인 시놉시스만 갖고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즉흥적으로 촬영한다. 배우들은 촬영 첫날에도 영화 속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고 촬영장에 가서 대본을 받아든다. 그의 영화를 보면 특별한 세팅 없이 일상적인 배경에서 술 마시며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스토리인지라 큰 돈 들어갈 일 없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연료가 상당히 높은 고현정, 유준상, 김상경 같은 유명 배우도 가끔 출연하지만 연기 폭을 넓히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 개런티로 출연한다. 일반적으로는 따라할 수 없고 홍 감독이기에 가능한 초저예산이라서 영화 발전에 기여하는 제작 방법은 아니다.


다만 홍 감독의 영화는 소수의 마니아층이 있어 늘 일정 관객을 확보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개봉 전에 홍 감독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적 있는 관객 1304명을 대상으로 맥스무비영화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 그의 신작을 극장에서 볼 계획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74%였다. 관람 의사를 밝힌 응답자의 63%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에 볼 것'이라고 답했다. 홍 감독 영화 18편을 모두 본 비율은 24%였고 4편 이상 봤다는 응답자는 83%였다. 홍상수표 영화는 보는 사람만 주로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 감독에 대해 관심 없던 사람들도 2016년 6월에 드러난 김민희와의 불륜설을 계기로 그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아내와 대학생 딸이 있는 유부남 감독이 영화에서 여배우와 호흡을 맞추면서 연인 관계가 됐다는 보도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두 사람의 열애가 실명으로 보도되자 홍 감독 아내의 친정 어머니는 쇼크로 실신했다고 전해졌다.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기만 바라고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고 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카카오톡에서 홍 감독 아내는 “따님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너무 괴롭습니다”라고 김민희 엄마에게 부탁했지만 “바람난 남편의 아내가 더 아플까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딸의 엄마가 더 아플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홍 감독이 집을 떠나면서 딸에게 한 말은 자식에게 직접 할 얘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대중은 더욱 격분했다. “아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어. 그 여자가 내게 용기를 줬어. 이제 그 사람과 함께할 거야.” 그리고 아내에게는 “이제 다른 사람과 살고 싶어. 나가서 남자들 좀 만나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홍 감독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김민희에 대한 속마음을 표현했다. 김민희 상대역인 정재영의 대사에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싶어요. 근데 결혼 못할 것 같아요. 결혼을 했거든요. 애가 둘이나 있어요. 매형이 있는데 화가예요” 등 자신의 실제 상황을 나타냈다. 네티즌들은 영화 제목을 변형해 '지금도 틀리고 그때도 틀렸다'며 비난했다.

홍 감독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1년 만에 자퇴하고 미국으로 유학갔다. 미국 시민권자인 여성과 25세에 결혼해 한국 병역 의무에서 벗어났고 아내 덕에 군대에 안 간 상태로 홍 감독은 32세가 되자 귀국해 방송PD로 일하기 시작했다. 국외인 한국에서 돈 벌면서 미국에 납세의무를 지니는 미국시민권은 포기했다. 아내는 효부로 알려졌다. “비록 막내며느리지만 시아버지 제사를 혼자 책임졌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아픈 시모에게 최선을 다했다. 지난 4년 시어머니를 돌보는 게 일상 중 하나였다. 마지막 눈을 감기 전까지.”(디스패치, 2016년 6월21일) 그러나 홍 감독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두달 뒤 집을 나갔다.

◆영화 속 과거-현재-미래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던 홍 감독과 김민희는 9개월 만인 지난해 3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발표회에 나타나 취재진에게 “저희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입니다”라고 불륜 관계를 인정했다. 유부남인 감독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가 주인공인 영화라서 두 사람의 심정을 담은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에는 유부남 감독(문성근)과 사랑하는 사이가 됐지만 스트레스와 회의를 이기지 못하고 독일로 떠난 여배우 영희(김민희)가 함부르크에서 지인들을 만나 자신의 곤란한 상황을 얘기하며 해변으로 소풍 가는 장면이 나온다.

지인들은 영희가 유부남 감독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위로한다. 김민희의 대사에 실제 현실을 나타내는 얘기가 나온다. “그 사람 자식도 있거든. 자식이 진짜 무서운 거 같아. 난 남자 얼굴 안 봐. 진짜 보고 싶네. 나처럼 내 생각 할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답게 살 거야.”

1부의 배경인 독일은 흑백에 가깝게 처리되다 영희가 한국으로 돌아와 강릉을 여행하는 2부는 컬러로 바뀐다. 영희 주변 사람들은 영희 편에 서서 위로한다. 불륜에 빠진 영희를 두고 "매력적이다", "예쁘다", "친구 하자"면서 다가온다. “가치도 없는 것들. 진짜 사랑을 모르니까. 가만히 좀 놔두지. 할 일이 없으니까 그래 사람들이.” 이런 대사들은 현실 속 두 주인공이 세상을 향해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자기합리화 영화라면서 불쾌해하는 네티즌 생각과 달리 영화계 전문가들은 이 영화를 2017년 국내 영화 베스트 1위로 꼽았다. “끝내 탄복해버린 진심의 무게”(김소희), “홍상수의 진심이 이만큼 드러난 영화는 없었다”(우혜경), “모든 매료된 것에 솔직하고 아름답게 반응하는 영화. 그 솔직함이 끝내 그 처절한 아름다움을 느끼게한다”(이지현), “홍상수의 변화. 관찰의 영화에서 고백의 영화로”(이주현) 등 영화 전문가들은 불륜 고백을 가치 있는 진심의 항변으로 받아들이면서 대중들과는 커다란 시각 차이를 나타냈다. 평론가 정성일은 ‘나는 홍상수를 지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도 발표했다.(지큐 코리아, 2017년 4월21일)

홍 감독이 이어서 만든 영화 <그 후>도 불륜을 소재로 했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장 봉완(권해효)과 내연녀였다가 헤어진 창숙(김새벽), 신입사원 아름(김민희), 남편의 바람을 눈치 챈 아내(조윤희) 사이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상황과 그 후일담으로 구성된 영화다.

봉완은 아름과의 현재, 창숙과의 과거, 아름과의 미래를 오간다. 봉완은 아름과 창숙 사이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사면초가에 처하자 운다. 그리고 한참 후 그날 일들을 잊어버리면서 갈등을 회피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사회적 비난에 시달리는 김민희를 위로했다면 <그 후>는 본인이 느끼는 갈등을 표출했다.

현실과 영화, 양쪽에서 불륜을 소재로 사랑의 실체에 대한 질문을 자기 방식으로 던지는 홍상수 감독은 요즘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8호(2018년 2월21~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